From R. W. Davies’s.

Original book: The Socialist Offensive (1989, Macmillan Press)

용어에 관하여 (Technical Note)

이 글은 저서에서 사용된 몇 가지 용례를 정리하고 같은 기간 [1929-1930] 동안의 소비에트 행정구조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1) 당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여섯개의 ‘연방 공화국 (Union Republics)’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소련과 각각의 연방 공화국은 모두 인민위원소비에트 (Sovnarkom)를 수장으로 하는 고유한 정부와 함께 인민[정치]위원회 (Narkoms, 즉 정부 부처) 를 보유했다. 몇몇 인민위원회 (예컨대 전쟁과 운송 등)는 소련, 또는 ‘전-연방’ 단위에서만 존재했다. 두 번째 범주 (예컨대 재정과 공업 등)는 ‘전-연방’과 ‘공화국’ 양자 단위에서 있었고, 세 번째 범주 (예컨대 교육 등)는 공화국에서만 존재했다. 1929년 12월 전-연방농업인민위원회 (Narkomzem)가 결성되기 전까지 농업은 각 공화국의 농업인민위원회만이 주관했고, 따라서 농업은 세 번째에서 두 번째 범주로 옮겨가게 된 셈이었다. 이 책은 편의를 위해 전-연방위원회 또는 다른 기관들을 지칭할 때 ‘소련의’를 붙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재정인민위원회 (Narkomfin)’는 소련의 재정인민위원회를 지칭하고, 러시아공화국 단위의 같은 위원회를 가리킬 때는 ‘러시아소비에트연방사회주의공화국 재정인민위원회’라는 식으로 표기했다. 소련 및 제(諸)공화국의 인민위원소비에트도 이와 유사하게 서술했다. 전-연방 기관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이 책에선 러시아공화국에 해당하는 기관을 약칭으로 표기했다. 따라서 1929년 12월까지 러시아소비에트연방사회주의공화국의 농업인민위원회는 단순히 ‘농업인민위원회’라고 쓰지만, 1929년 12월 이후 ‘농업인민위원회’는 전-연방농업인민위원회를 가리키며, 러시아공화국의 농업인민위원회는 ‘러시아소비에트연방사회주의공화국의 농업인민위원회’라고 쓴다.

(2) 전통적으로 큰 공화국 지역 정부에서는 차례대로 uezdy (군)과 volosti (지역구)로 나눌수 있는 gubernia (주)가 주된 단위였고, selo (촌)은 최하위의 행정 단위였다. 1929년에 이르러 새로운 구분으로의 이전이 거의 완료되었다. 주요한 단위는 oblast’ 또는 krai (지역)였다. 양자는 같은 위상을 같고 따라서 모두 ‘지역 (region)’로 옮겼다. 각 지역은 여러 개의 이전 주 또는 주의 일부를 포함했다. oblast’와 krai의 차이는 단순히 후자가 그 지역에 속한 자치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혼란스럽게도 ‘자치공화국 (ASSRs)’은 지역 (oblast’ 또는 krai)과 대략적으로 같은 위상을 지녔고, ‘자치주 (autonomous regions)’는 krai에 속했다. 자치주는 okruga (여기선 단순히 okrugs로 표기하지만, E. H. Carr는 자신의 책에서 ‘부 (departments)’로 썼다)로 나뉘고, 또 다시 여러 개의 raiony (구역)로 나뉘었다. selo (촌)는 최하위의 행정 단위로 남았다. 도시는 각자가 지닌 중요성에 따라 구조의 다양한 단위에 속하게 되었다. 1930년 여름과 겨울, okrugs가 폐기되었고, 따라서 연방공화국 (SSR)-지역 (oblast’ 또는 krai)-구역 (raion)-촌이 기본적인 구조가 되었다. Okrugs를 폐기하기 직전 소련에는 13개의 지역, 207개의 okrugs, 2,811개의 구역, 71,780개의 촌락소비에트가 존재했고, 지역민은 1억 2천만여 명에 달했다. 따라서 구역의 평균 인구는 40,000명 (약 8천 가구)을 상회했고, 촌락소비에트의 평균 인구는 약 1,700명 (약 350 가구)이었다. 또한 15개의 자치공화국과 17개의 자치주가 있었다.

(3) 포괄적으로 말해 당의 구조는 정부의 구조와 유사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상위에 있었지만). 최상층에서 당대회는 중앙위원회를 선출했고, 중앙위원회는 총서기 (Stalin)가 주재하는 정치국 (Politburo)을 지명했다. 정부 (소비에트) 구조에서는 소비에트대회가 매개자인 중앙집행위원회 (TsIK)을 뽑았고, 중앙집행위원회는 의장 (Rykov)이 주재하는 인민위원소비에트를 지명했다. 정치국과 인민위원소비에트는 각각 당과 정부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중심적인 업무체였다. 전-연방 단위 밑으로 공화국은 각자의 정치국, 중앙위원회, 중앙집행위원회, 인민위원소비에트를 보유했다. 모든 지역, okrug, 구역, 도시, 촌락에서 핵심이 되는 관료는 당위원회 서기와 소비에트집행위원회의 의장이었다.

(4) 1929-30년 동안 소비에트대회는 1929년 5월 (5차) 한 차례 소집되었고, 중앙집행위원회도 1929년 12월 한 차례 소집되었다. 당대회 (16차)는 1930년 6-7월 한 차례 (1929년 4월 16차 당회의가 열렸다) 소집되었고,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1929년 4월과 11월, 1930년 7월에 각각 소집되었다 (1930년 7월 전원회의는 당대회와 관련된 공식 행사였다). 정치국과 인민위원소비에트는 자주, 최소 주 단위로 회동했다. 정치국 결의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나온 것으로 공표되었고, 따라서 이 책에서는 그렇게 적었지만, 실상 그러한 결의들은 대개 정치국의 결정임을 알아두어야 한다.

(5) 중앙위원회 (실제로는 정치국)는 전임 당관료로 구성된 중앙위원회 산하 부서의 지원을 받았다. 1928년 봄, 시기를 달리하며 바우만 (Bauman) 또는 몰로토프가 주재한 ‘지방countryside에서의 근무를 위한 부서’가 구성되었다. 이 책에서 단순히 중앙위원회 ‘지방 부서’로 지칭한 이 부서는 1930년 1월 폐지되었다.

(6) 농업년도는 7월 1일부터 다음 해의 6월 30일까지이고, 경제년도는 10월 1일부터 [다음 해의] 9월 30일까지이다. 1929/30 경제년도 직후 1930년10-12월은 ‘특별 분기 (special quarter)’였는데, 이후 경제년도와 역년(曆年)이 일치했다. 이 책에서는 소비에트 방식을 따라 경제년도와 농업년도를 ‘1928/29’와 ‘1929/30’처럼 대각선으로 표시했고, 역년을 가리킬 경우엔 ‘1928-9’, ‘1929-30’으로 썼다.

Author: Donghyun Woo

¡continúa la lu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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